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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설희자연의 생동감을 자연에 순응하듯 캔버스에 풀어내다

내면에서 나오는 반추상화

“자연은 우리에게 아낌이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번 축제를 펼친다. 치유의 숲, 풍요의 숲이다. 자연의 일부분인 우리는 자연과 함께 숨을 쉰다. 작가는 자연의 생동감을 자연에 순응하듯 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다. 숨처럼 쉬어지는 공기 또한 작품에 녹이려고 했다.”

이설희 작가는 평택시 도일동 우리 동네 갤러리 ‘도담’의 3주년 기념 초대 작가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그의 그림을 반추상화라고 했지만 반추상화는 세상에서 규정하는 장르고, 자신은 내면에서 이끌리는 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고 내 안에서 나오는 감정, 욕구 등이 표출되고 그동안의 한이 작품으로 승화돼 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한다.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는 감흥을 자신 안에 소화 시킨 다음에 작품이 나온다.

“주제는 나 입니다. 내가 자연과 몰아가 돼서 마음을 표현하는 거죠. 사물을 보고 느끼고 삶의 모든 고통 가치 등이 내 안에 들어와 작품으로 완성이 돼 나옵니다.”

꽃을 그려도 똑같이 그리는 게 아니고 마음 붓이 가는 대로 그리다 보면 작품이 나온다.

그는 사람들이 버리는 게 추하다고 했다. 즉 자연은 자연 그대로여야지 자연 속에 인위적인 게 포함되면 보기 싫다.

“자연은 흐트러져도 있어도 어떤 모습이라도 자연 자체로 사계절이 아름답습니다.”

 

자전적인 작품 ‘소원을 말해봐’

이설희 작가는 도담 3주년 기념 초대전에 자연의 축제, 환희, 천사의 정원, 오후의 휴식, 행복한 정원 등 9개의 작품을 출품했다. 그중 대표작이 ‘소원을 말해봐’다.

작품 ‘소원을 말해 봐’는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자신을 표현하는 꿈을 꿨는데 그 꿈을 이루는 데 세월이 너무 오래 걸렸다. 환경도 열악했다. 병든 남편을 돌보고 아이 키우면서 먹고 사는 문제까지 있어 소원을 이루기가 너무 어려웠다.

소원을 끊임없이 가짐으로써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됐다. 어려웠던 가정 탓에 20년을 그림을 떠나 살았지만 결국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자아의 정체성을 찾았다. 소원을 이룬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한데, 그림이 없다면 점점 어둠에 침식되는 것처럼 각박해지고 삭막해지고 나무에 물이 말라가는 것처럼 고갈되는 느낌이 들어.”

그의 작품 속 하나하나 공중에 떠다니는 꽃들이 그의 마음이고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다. 선과 점은 부정 에너지를 뱉어내고 긍정에너지를 받아서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나타냈다. 그림에 대한 열망을 펼쳐가는 것이다.

이 작가는 2024년에는 작품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회 때마다, 작품을 낼 때마다 새로운 ‘나’를 보여주기 위한 새로운 작품을 내고 있다. 그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은 모든 시간 속에 만나고 체험하는 것들이라고 한다.

“좋은 작품이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작품입니다. 힐링과 치유, 시대성을 갖고 대상을 한정하지 않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역동을 그려낼 것입니다.”

 

우울증을 떨치게한 그림

이설희 작가는 평택이 고향이다. 복창초등학교와 은혜중, 효명고를 졸업했고 수원대학교 사회교육원 학사, 홍익대 특설미술교육원을 수료했다.

홍익대학교에서 그림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는 작고한 서장호 선생에게 사사받았다. 또 평택의 송기수 선생도 이설희 작가에게 영향을 준 작가다.

이설희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그림을 그린 것 같다”며 어릴 때부터 그렸다고 했다. 그림이 너무 재미있고 슥슥 그리면 그림이 나왔다고 한다.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이설희 하면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언니와 동생 오빠 등도 작가로 인정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그림을 반대했다. 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이설희 씨가 우울증을 털어내고 일어서는 계기가 생겼다. 고등학교 다닐 무렵 부모님이 송탄 영천호텔 지하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그 레스토랑에 그가 스케치나 수채화 등을 그려 걸어 놓았다. 미국인 손님들이 그 작품을 보고 환호를 하며 구매해 갔다. 심지어 신문지로 탈바가지를 만들어 걸어놓으면 그것도 좋다고 사 갔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이설희 씨. 외국인이 그의 작품을 보고 사가는 것을 보고 생각한다.

“이게 뭐지? 왜 내가 만들어 놓으면 사 가지고 가지?”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가치 있는 존재구나. 내가 살아도 되겠구나. 그림으로만 살아도 되겠구나”하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그때부터 부모님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 씨를 다시 삶의 의욕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그림.

 

어려움 딛고 다시 그림으로

그 후 그림을 더 깊이 더 넓게 배우고 싶었다. 미국 사는 언니 이종옥 씨가 초청해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로 갔다. 그때가 28세였다. 지역 한인의 미술단체에 가입하고 전시회에 참가했다. 지역커뮤니티에서 수상도 했다. 8년을 계획하고 간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대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 꿈이 좌절됐다. 미국 생활 2년이 됐을 때 한국에서 어머니가 실명했다고 그를 호출한 것이다. 외면할 수 없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소식, 그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다시 미국으로 갈 수 없었고 그의 미국에서의 꿈은 끝났다.

그는 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미술협회 송탄지부 초대 사무장을 맡았다. 필화랑과 맥화실 등에서 스케치 등 그림을 연마하는 등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된다. 병 치레를 하던 남편을 간호하고 아들을 키우며 생활하느라 20년 동안 그림을 놓았다. 남편의 건강이 회복이 되고 아들도 성인이 되자 한숨을 돌린 그는 지난 2014년에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오히려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더 단단해졌다. 그림이 달라졌고, 그림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남편이 회복되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다시 마른나무에 물이 올라가고 꽃을 피우듯이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동기를 부여하는 화가 자매

이설희 작가의 가족은 화가 가족이다.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에 살고 있는 언니 이종옥 씨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고, 동생 이하윤 씨는 미국과 한국을 넘나드는 미술·디자인과 설치미술 등으로 유명한 재미화가다.

이설희 작가는 라메르갤러리, 인사이트프라자갤러리, 한가람 아트갤러리, 남송미술관, 도담갤러리 등에서 개인전과 초대전, 개인부스전을 진행했고 예술의전당에서 한국미술협회 정기전, 평택시북부문화예술회관에서 송탄미술인회정기전, 한국녹색미술인회정기전(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등에 출품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한국녹색미술협회, 아트피아, 송탄미술인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설희 작가는 “내 안에 일어나는 역동적인 삶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작품을 시도하려 한다”고 했다. 동생 이하윤 작가처럼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꿈이며 목표다.

노용국 기자  rohyk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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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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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설희 2024-03-29 04:07:25

    좋은 기사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문이 있고 세상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사람 향기가 나는 신문이 되기를 기대하며
    무궁한 발전을 바랍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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