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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문자-시로 여는 세상

지리산 골짜기에 어둠의 모서리를 깎아 새긴 목판본을 읽는다

 

그대가 적어 놓은 몇몇 문장을 필사하면서 혹은 만져 보면서 나는 여러 번 넘어진 적이 있다 흘림체의 문자향에 취해서가 아니라 넘어서지 못한 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검은 피로 적은 문자들은 먹향 따라 휘발한 지 오래여서 누렇게 변한 종이 위를 기어 다니던 글자들이 어디로 갔는 지 뒷산을 오르내리며 헤적인 적 여러 날이다

 

문자를 지우고 빠져나간 마음의 행적을 따라가면 보일 듯도 하였으나 닥나무 종이에는 그대가 없다 그대가 흘린 몇 방울의 눈물 자국이 글자를 끌고 간 흔적과 심장에서 타오르던 불에 그을린 종이의 끄트머리 눈썹만 남아 그대의 마자막을 증언한다

 

문자 밖으로 슬그머니 다리를 내미는 희고 눈부신 찰나를 본 듯도 하여 새들이 점점이 흘리고 간 초서체의 발자국들을, 오래 서성이다 돌아가는 저녁의 어깨너머로 바라본다 밤새 눈썹 끝에 매달려 어릉거리던 문자들이 방울방울 떨어져 새벽 어스름에 닿아 죽는다

평택시대신문  pts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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