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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욱 전)대한적십자 경기도협의회 회장35년 봉사人, “봉사는 나의 운명”

2만4천 봉사시간 적십자사 ‘명예의 전당’ 등재

‘1원 1m 걷기대회’ 인원동원 기네스북 오르기도

사업도 달인, 마들렌식품 정상궤도에 올려놓아

 

소외된 자의 삶에 무게를 덜어주고 그들의 빈곤한 마음에 풍요로움을 채워주는 일이 봉사의 기본이라고 주창하는 ‘적십자 봉사人’ 이필욱 전)경기도협의회 회장. 그는 “적십자 봉사원은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적십자 봉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봉사에 나선다면 누구나 마음을 비우고 진솔한 태도가 필요하다. 어설프게 흉내만 내고 가식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수혜자가 먼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며 봉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봉사를 하려는 자는 수혜자에게 희망을 주고 삶에 대한 의지를 심어주는 역할에 앞장서라고 주문했다. “내 앞에 산이 있어서 생각 없이 무의미하게 그저 올라가기만 한다면 땀만 흘릴 뿐이다. 정상을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꿈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십자 봉사人’의 완성은 변함없는 인내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뤄진다고 말하는 이필욱 회장의 봉사 철학과 더불어 정상을 떠난 후 그의 발자취가 선후배에게 귀감이 되고있다.

 

입문과 선굵은 봉사

이 회장은 1984년 8월 평택봉사회를 통해 적십자 봉사에 입문했다. 어느덧 강산이 세 번 반을 넘는 35년차다. 서른다섯 해 겹겹이 쌓인 세월만큼이나 무려 2만4,000시간이 넘는 봉사시간을 탄탄히 쌓았다. 그의 대한적십자사 ‘명예의 전당’ 등재는 대한적십자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증거다. 이는 전국봉사회 모든 봉사원의 동경의 대상이다.

그가 평택봉사회에서 처음부터 총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부터 운명적으로 적십자 봉사에 뛰어든다.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친다가 1990년도 초반에 평택봉사회에서 회장을 맡기에 이른다.

이 회장은 거기에서 멈추기 않았고 평택시 적십자 봉사회를 규합하게 되는 평택시협의회를 탄생시켰다. 시협의회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단위봉사회 결성이 우선이었다. 당시 평택군에 단위봉사회가 2개에 불과했다. 적십자 봉사 지원자를 발로 뛰며 만나고 체계를 갖추도록 도와 5개의 단위봉사회를 조직했다. 그는 평택시협의회 초대, 2대 회장을 연임했다.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는 인향만리란 말이 있다. 그가 봉사의 달인이라는 소문은 중앙무대로 퍼졌고 결국 전국협의회 총무처장(2003~2007년)을 4년을 역임했고, 전국협의회 감사와 부회장, 경기도협의회 회장 등을 두루 거쳤다.

현재 경기도와 전국협의회 고문과 자문위원회 일원으로 후진양성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 조직법과 수입·지출 예산을 다루는 평택시대의원, 경기도대의원을 역임하고 현)전국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하듯이 임원과 회원의 고충을 한 눈에 읽어야 하고 빠르게 진단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라며 “개인의 단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장점을 찾아 격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로 리더로서의 그의 마음가짐과 선후배가 그를 본받아야할 지도자로 생각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적십자 관련 표창은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평택군수 표창과 보건복지부장관표창, 정부국민포장, 사회봉사부분 적십자포상 3회, 적십자봉사상(금장), 자원봉사 20,000시간 대한적십자사 총재표창, 장기봉사원(30년) 표창, 경기도협의회 우수봉사원 표창 등. 최근 수상한 국제적십자연맹 총재표창은 35년을 묵묵히 걸어온 흔적만큼이나 명예롭다.

이 회장은 적십자라는 큰 봉사에 점 하나만을 찍었을 뿐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보인다. 하지만 선후배와 동료들은 누구나 봉사원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인내와 끈기가 없이 이 과정을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봉사위한 수신제가

수신제가는 봉사人이 먼저 갖춰야 하는 조건이다. 건강이 우선이고 안정된 사업과 평안한 가정을 이뤄야 봉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사업에서도 세심한 곳까지 진단하고 두들기는 철두철미한 성품과 꾸준한 노력으로 성공사례를 남겼다.

그는 충남 천안에서 귀금속판매업을 하던 매형의 권유로 1977년 평택에 정착해 평택사람이 됐다. 매형에게 배우고 익힌 기술로 금은방을 운영했다. IMF외환위기 전인 1997년까지는 호경기였다.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부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힘들었던 IMF는 이 회장도 비껴가지 못했다. 오직 한우물만 팠던 사업인데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금은방을 접었다.

이 회장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새로 창업한 제과점은 전화위복과 대반전의 계기가 됐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제과를 납품의 계기로 사업장을 확장했다. 이 회장의 진솔함이 꼬리를 물고 소문이 자자해지면서 거래처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식품판매업에 도전한 것이 지금의 ‘마들렌식품’이다. ‘마들렌식품’은 현재 이 회장의 대표사업장이 됐다.

 

봉사는 진행형

평택지구협의회에서 성공한 사업이 모델이 돼 경기도협의회와 전국협의회의 대표 사업이 된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봉사원 인원동원 기네스’에 오른 ‘1원 1m 걷기대회’는 봉사원과 학생이 5km를 걷는데 1m를 걸을 때마다 1원씩 기부되는 행사다.

또 평택시 초중고, 대학생과 일반인이 평택에서 출발해 임진각까지 가는 ‘5박 6일 4백리 대장정’, 초중고 학생과 RCY 대원과 함께하는 ‘희망나눔 기아체험’, ‘캄보디아 자원봉사단’, ‘장애인과 함께하는 백두산 견학’ 등이 있다.

이필욱 회장은 “‘태안반도 기름유출’,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등 돌발적인 재해·재난사고에 구호는 적십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크고 굵직한 사회봉사는 지속해 가야한다”고 한다고 강조한다.

이 회장의 나이는 66세 적지 않은 나이다. 봉사 행로에 경험자로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봉사를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밝힌다.

“나는 아직 청년이다. 대한적십자사 봉사원 은퇴 정년은 77세인데 아직 강산이 한 번 바뀌는 한 순배의 여유가 있지 않은가. 앞으로 10년은 평택촌놈이 축적하고 다져온 ‘봉사특허’를 만방에 전하는 일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

지도자는 조직을 이끌어가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대로 구성원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탁월한 지도자는 조직원의 능력과 조직의 상황을 잘 판단해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수립해 조직원을 이끈다. 때문에 조직원이 한 뜻으로 움직여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적십자 봉사 35년 후문이 아름답듯 청년 이필욱 회장의 앞날에도 경륜에 바탕을 둔 봉사와 탁월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노용국 기자  rohyk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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