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사회
한반도 평화통일! 참가실천운동으로 풀어가자!사)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평택시 희망전진대회

3·1운동 100주년 기념 남북통일과 참가정실천 운동

 

지난 5월 1일 평택시 남부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남북통일과 참가정실천운동 평택시 희망전진대회’가 개최됐다.

‘평택시 희망전진대회 실행위원회’가 주최하고 ‘사)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이 주관한 이 행사는 홍타령팀의 특별공연과 이이화 외 2인의 축가로 흥이 보태지고 각계 단체장, 시민 7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을 이루었다.

사)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박래영 평택시 회장의 환영인사, 원유철, 권영화 시의장의 축사, 이연우 도지부 회장의 격려사와 김재균, 서현옥, 오명근 도의원, 이해금, 김영주 시의원, 공재광 자유한국당 평택을 위원장 조계종 원명스님 등이 참석했다.

마승배 박사의 ‘한반도 평화통일! 참가실천운동으로 풀어가자!’는 주제로 양극화 갈등을 이겨내고 참가정실천운동을 통해 다가오는 한반도 통일한국시대를 극복해가기 위한 취지의 특별강연이 돋보였다.

이번 희망전진대회에 이종철 관장의 만세삼창과 폐회선언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한정인, 오카자끼 유미 ‘스피치’가 희망전진대회를 빛냈다. ‘한정인’은 ‘참가정실천운동’을 통해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송탄에 살고 있다.

한정인의 어머니는 어느 날 꿈에 조상들이 컴컴한 공간에 앉아 슬프게 통곡을 하면서 “네가 한국에 가서 희생하며 조상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청산하지 않으면 이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갈 수가 없다. 부디 네가 한국에 가서 우리를 해방시켜 줘라”라고 간절히 부탁 했단다.

꿈에서 깬 어머니는 “나는 한국에 뼈를 묻어야 되는 운명이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참가정실천운동’을 통해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한정인은 어렸을 때부터 유관순 열사를 언니로 표상하며 늘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에 감동해 자신도 유관순 언니처럼 대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던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생활해왔다.

한정인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유명한 영통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첫 대면에 “어?! 유관순이네?” 깜짝 놀랐다는데 그 영통인은 “유관순이 왜 나를 닮으려고 해? 나 닮지 말고 너는 살아서 세상을 위해서 살아야지! 살아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지! 살아서 참된 가정을 이루어 참된 사람이 되라”라고 했단다.
한정인은 “유관순 언니는 나라를 위해서 목숨만 바친 것이 아니라 목숨, 가정, 미래의 모든 것의 희생과 유관순 언니를 대신하여 세상의 빛이 되는 일을 찾겠다”라며 “유관순 열사의 희생정신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참사랑의 이념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현재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태어난 흑인 남편과 결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얻었고 7월에는 셋째가 태어난다.

내년 12월, 남편의 나라 아프리카로 돌아갈 예정이다. 꿈과 희망이 있다면 기아 질병 내전 인종 차별 등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과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아프리카 땅을 만들고 싶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오카자키 유미’는 지난 2,000년도에 한국에서 결혼하고 시부모와 남편, 3명의 자녀와 함께 평택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 살게 된 동기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가정과 사회를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불신, 불만, 불행한 삶이 엿보이고 미래를 생각할수록 희망이 없어졌다. 결혼을 해도 가정이 깨진다면 자신도 그렇고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데 차라리 요즘 젊은이들 처럼 결혼을 안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했다.

마음은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했고 평화로운 세계를 그리든 어느 날 지인을 통해서 ‘참가정실천운동’을 알게 되었고 아! 이런 뜻으로 서로가 노력한다면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지고 국경이 없는 평화세계도 이루어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과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이런 결혼이라면 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에서 언어, 환경, 전통에 적응이 힘은 들었지만 역사적으로 원수의 나라인 일본에서 온 나를 가족도 친척도 그리고 주변사람도 반갑게 맞이해 주고 따뜻한 사랑과 정이 있었기에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견뎌낼 수가 있었다.

가정은 가족 덕분에 잘 지냈는데 사회생활이 어려웠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아르바이트였다. 정말 열심히 해서 사장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지인이 다른 회사를 소개했다. 안정된 자리를 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겠다고 사장에게 사정 얘기를 했는데 사장은 화를 내면서 “일본사람을 믿으면 안 되겠다. 앞으로는 외국 사람은 쓰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
나 때문에 일본사람 전체와 다문화 가족이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 미안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일본과 세계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했고 국경이 없는 사회가 되도록 바라면서 살고 있다.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고 세계평화도 행복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발표했다.

 

노용국 기자  rohykook@hanmail.net

<저작권자 © 평택시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