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담배는 내 인생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금연

IMF

지금으로부터 십칠여 년 전, 그러니까 2000년 겨울에 나는 쫓기듯 중국으로 건너갔다.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아직까지도 확실치 않다. 내 발로 중국행 비행기를 탔으니 자의라고 할 수 있지만, 초토화되어 버린 세상에 떠밀려 그곳까지 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타의 같기 때문이다. 그때는 세상이 IMF의 직격탄을 맞고 쑥대밭이 되어버린 시기였다.

 

그전까지 나는 그저 은행원이었을 뿐이다. 내가 다니던 은행은 그때 퇴출되었다. 이십 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아직도 IMF가 어디에서 날아온 포탄인지 알지 못한다. 외환위기 때문에 IMF가 왔다는데 나는 그때까지 ‘외환’이란 것을 제대로 만져본 적조차 없었다. 그 당시, ‘외환’이라는 물건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했기에 온 나라가 그토록 쑥대밭이 되어버렸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때 쑥대밭으로 내몰려 아직까지도 쑥대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생들이 즐비한데도.

 

중국

그곳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는 참혹한 전쟁터이자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찾아내야 할 마지막 보급기지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단지 사람들만 우글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우글거리는 것들 속에는 사람이 아닌 것들도 많았다. 그들은 사람 행색을 하고 사람들 속에 섞여 살지만 사실은 범보다 더 무서운 짐승과도 같아서 몸서리나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 무서운 것들에게 또 당했다.

 

IMF로부터는 땀 흘리며 다니던 직장을 빼앗겼을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피 흘려 만든 회사를 빼앗겼다. 한국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IMF라는 귀신한테 당했지만 중국에서는 매일 보이던 것들에게 당했다. 그들은 내가 만든 회사의 중국인 직원들이었다. 나는 쑥대밭을 피해 지뢰밭으로 간 것이다.

 

담배

담배는 나의 오랜 숙적이었다. 담배를 알고부터 신성했던 내 몸은 흡연과 금연의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내 몸 안에서 벌어졌던 그 담배 전쟁은 영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졌던 아편전쟁만큼이나 지루하고 참혹했다. 전쟁의 승부는 거의 삼십 년 가까이 나지 않다가 전쟁터였던 내 몸이 폐허가 되자 겨우 끝이 날 기미가 보였다.

 

여자를 알고부터 여자 때문에 힘들었듯이 담배를 알고부터는 담배 때문에 힘들었다. 피울 때는 끊지 못해서 힘들었고 끊을 때는 피우고 싶어서 힘들었다. 끊기 전에는 시커멓게 찌든 내 폐가 꿈에 보여서 힘들었고 끊고 나서는 담배를 물고 있는 내가 꿈에 보여서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허우적거렸다. 제대하고 나서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꾸는 것과 금연하고 나서 다시 흡연하는 꿈을 꾸는 것은 꿈이 나에게 부리는 최악의 악질이다.

 

그래서 금연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현재의 상태를 말할 뿐 죽을 때까지 ‘했다’고 할 수 없다. 완전한 금연이란 내가 담배를 완전히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내가 완전히 끊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신만고 끝에 내 몸에서 담배를 몰아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도 꽃이 피어났듯이 담배연기가 멎자 니코틴에 피폭된 내 몸에서도 서서히 꽃이 피기 시작했다. 몸 안에 꽃이 피니 몸이 좋아졌고 몸이 좋아지니 마음에도 꽃이 피었다. 확실히 몸과 마음은 불가분의 관계다.

 

약탈

나는 중국에서 유자차를 팔아서 먹고살았다. 중국 사람들이 생전 처음 보는 유자차를 무지막지하게 많이 사 먹는 바람에 한때나마 나는 잘 살았다. 상해에서 팔아먹는 게 모자라서 북경까지 가서 또 팔아먹었다. 나는 그때 북경에 있었는데 어느 날 상해 본사에 있는 여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 어떤 사람들이 변호사와 같이 와서, 자기네들이 이 회사를 샀으니 법인 도장과 장부를 넘기고 모두 나가라고 합니다. 매매 계약서가 있어서 저희들은 법적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

 

회사의 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던 그 여직원이 오열하며 전해 온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내 회사가 나도 모르게 팔렸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기도 했다. 그제야 휴가를 떠난 북경사무실의 조선족 운전기사가 떠올랐다.

 

회사 설립 당시 외국인에게 유통업을 개방하지 않은 중국법 때문에 수족처럼 믿었던 그의 명의로 등록했는데 그 새끼가 어떤 새끼에게 회사를 넘겨버린 것이다. 행여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안전장치를 한답시고 상해 사무실의 한족 운전기사와 공동명의로 해두었는데 그 새끼도 한통속으로 가세했다. 더 기절할 노릇은,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모든 작전을 세우고 진두지휘한 것은 내가 그토록 믿었던 조선족 여직원과 그녀의 남편 새끼였다. 그 여자가 오열하며 내게 전화한 것이었다. 회사를 산 새끼는 그 여자의 남편 새끼의 친구 새끼였다. 그들은 모두가 사람 행색을 하고 다녔지만 결국은 우글거리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무서운 새끼들’이었다.

 

당시 회사의 순자산은 수십억 원이 되었다. 나는 한순간에 알짜배기 회사를 빼앗기고 알짜 거지가 되어버렸다. 내 인생도 비트코인처럼 해킹당한 것이다. 그때 나는 금연한지 삼 년쯤 되었을 때였다.

 

유혹

내가 그 참담한 전화를 받은 것은 북경의 왕징(望京) 거리에서였다. 그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담배였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눈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쳐들어가듯 들어가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아마 그때가 밤이었으면 독한 술도 한 병 샀을 것이다. 당시 내 얼굴이 얼마나 상기되어 있었던지, 또한 내 호흡이 얼마나 거칠었던지 점원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담배를 문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으니 입술에 물린 담배도 파르르 떨렸다. 짙은 담배 향이 코끝에 몰려들었다. 라이터를 집어 든 손도 마치 수전증 환자의 그것처럼 심하게 떨려 몇 번의 헛손가락질 후에야 겨우 불길이 피었다. 새어 나온 매캐한 가스 향이 니코틴 향과 뒤섞여 코끝에 닿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익숙했던 조합이 결합하려던 순간 하늘을 쳐다보니 햇빛이 눈부셨다. 현기증과 함께 구토증세가 몰려와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때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른 것은 괴이한 일이었다.

 

‘지금 이 담배를 피운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어떻게 담배를 끊었는데!’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나는 결국 담배와 라이터를 하수구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 이처럼 이성적인 생각이 떠오른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또한 불현듯 떠오른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은 더 큰 기적이었다. 그때 그 구멍으로 들어간 것은 담배 한 갑이었지만 그곳에서 다시 솟아오른 것은 희망이었다. 빠진 것에 비해 솟아난 것의 가치는 크고 값졌다.

 

금연의 의미

약 십여 년 전의 그 행위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했던 일 중의 하나였음은 명백하다. 만약 그때 단 한 모금만이라도 내 몸속으로 빨아들였더라면 그 순간부터 나는 피폐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내 몸에 둥지를 튼 니코틴은 필시 알코올을 불러들였을 것이고 나는 서서히 술과 담배에 지배되어 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내 육체와 정신은 나 자신도 모르게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담배의 중독성과 인체에 미치는 해악, 그리고 나 자신의 정신적 나약함을 생각하면 그렇다.

 

물론 그때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사는 되찾지 못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많은 고초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으려 애를 썼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만큼은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세상의 벽에 부딪쳐도 부서지지 않으려고 이를 앙다물었고, 엄청난 삶의 해일이 몰려와도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정신줄을 동여맸다. 나는 이 애처로운 몸짓의 원천은 바로 그 순간의 결연했던 금연 의지에서 비롯되었음을 굳게 믿고 있다.

 

이렇듯 금연이란 단순히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한 건강 프로젝트 이상의 의미일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담배를 아무리 피워봤자, 독한 술을 아무리 퍼마셔봤자 그로 인해 빼앗긴 회사가 되돌아올 리 만무하듯, 담배와 술은 우리에게 닥친 불행이나 악화된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오늘도 음습한 뒷골목과 어두침침한 선술집에는 날카로운 세상의 칼끝에 베인 아픈 중년들이 술과 담배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다.

 

흡연은 담배와 불의 화학적 결합이고 금연은 이들의 결합을 제지하는 최고의 물리력이다. 이 두 물질들은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는 이합집산할 수 없다. 이들을 결합하게 하는 것도, 또한 이들의 결합을 제지하는 것도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픈 가슴을 움켜잡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과감하게 내던졌을 때 비로소 험난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금연은 오로지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위대한 프로젝트다.

 

독자기고(서동진)  ptsnews@naver.com

<저작권자 © 평택시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